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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조은정
subject <윤지영 전시평론> 드라마 코드 - 이상과 현실의 간극과 그 공존의 혼돈스러움

<극 테마 : 이상과 현실의 간극>
드라마 코드 - 이상과 현실의 간극과 그 공존의 혼돈스러움


- 나레이션 -
저 넓은 하늘 아래 이 땅에 의존하여 움직이는 마치 개미와 같은 아주 조그만 어떤 한 사람이 있다. 결코 날개 달린 새가 될 수 없는 그 개체는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으며, 또한 무수한 많은 곳에  존재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의지한 현실과 같은 자신의 반경이 단지 그 정도만 허용된 범위에 비해 자신의 영역 밖의 공간을 힘겨워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상이라는 조절 영역 범위를 넘어선 머리위의 무한대 공허함의 중압감에 억눌려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마침내 모두가 동일시 된 인물로 우리 앞에 서게 된다.  


- 제1막 - 2007년 6월 13일 허상과 실체를 공유한 익명의 주인공 등장.
관객으로 보는 자 로서의 객체와 조우하게 되는 주체로서의 그들은 그, 그녀인 동시에 우리라는 집단체이며 또한 중복적으로 ‘나’ 라는 개체가 된다. 주체와 객체, 개체와 집단, 남성과 여성이란 상반된 단어는 원래의 의미를 상실하며 혼합된 이성의 존재자로 나타난다. 흔히 인간이란 정신과 육체로 양분화된 만물의 영장이며 이성을 소유한 존재라고 초기적 습득논리로 각인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성이란 명시적 설명만으론 너무도 부족한 정신의 영역은 볼 수 없는 눈 뒤의 머릿속을 헤엄치고 있지 않은가. 웹서핑을 하며 망망대해와 같은 무한대의 지식을 접하는 것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고 있다. 물론 초기적 근거에 근거하여 무한대의 헤맴으로 지식의 공유가 자유로울 수 있다. 더불어 생각해보면 이성이란 형태적인 모습인 인간의 머리는 사유를 자유롭게 하고 있는 이기적이며 독재적인 서핑 왕국의 절대자인 셈이다. 사유를 산출하는 이성 생산소를 커다란 나무와 비교해 볼 때 수많은 갈래의 세분화된 줄기로 나누어진 풍성한 사유의 잎과 줄기의 통로를 지닌 둥근 카테고리 분포가 비례가 맞지 않은 전시 작품과 유사 비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극히 사실적인 작업에 비해 정상의 왜곡은 반어와 풍자를 동반하며 가상 존재의 실체를 표현하게 되는데 직접적 긍정의 효과보다 부정의 부정은 강조를 극대화하게 된다. 현실공간에서의 압박감을 표현하는 형태의 방법으로 인체를 잡아당기거나 위에서 아래로 눌렀을 때의 모습과 같은 압축된 공간구성으로 인한 왜곡된 형태의 인체를 보여줌으로 어필 강조를 극대화 하는 작품도 있고 실재 이미지를 거대하게 확장, 혹은 축소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듯 우리의 관심사는 늘 표현으로의 다양한 독창적인 방법을 시도하게 되며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중심과 현실대변인 당위문제로 이 문제는 앞으로도 여전히 지속될 것이다.


- 제2막 1장 - 유명예술가 엑스트라 까메오 출연.
사실보다 리얼한 사실성을 강조하는 하이퍼 리얼리즘 조각가인 두안 핸슨(Duane Hanson)의 작품은 극사실로 현실을 풍자했음에 비해 본 전시 윤지영의 작업은 형태의 극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반비례 구조를 쓰고 있지만 앞에서도 언급한 반어의 형태를 취해 사실보다 사실을 능가하는 외침이 있음을 간파했으면 한다. 절규에 가까운 외침으로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는 주인공이 있다. 크게 벌린 입주변의 늘어난 근육의 표현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극 사실 조각과는 거리가 있지만 스컬피(Sculpey)의 반투명 베이지 컬러의 재료를 피부표현의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실재 피부 톤과 근접하게 시도하였으며 효과적인 재료의 특성상 탄력성을 지닌 피부의 느낌을 리얼하게 보여주게 된다. 스컬피는 정교하고 세밀한 손재주를 요구하게 되는데 얼굴 근육의 주름과 피부표현, 손을 표현하면서 더욱 정교히 작업한 손톱의 묘사 등 작품에서 세밀하게 표현한 부분들의 테크닉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 있을 것이라 보아진다. 작가적 관점에서 볼 때 당위논리의 일차적인 이유는 결국 자신이 외치고자 하는 웅변의 장이다. 인간이 외치는 인간논리 이기에 그것은 결국 사람중심과 사람들이 처한 현실의 주변을 터치하게 되는 것이리라. 다만 해석하는 관점이 다양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구상과 비구상의 영역, 입체와 평면의 영역으로 구분되는 다양한 현대미술의 장르 속에서 형태와 기법은 다양하게 표현되고 해석되고 있다. 결론적으론 우리가 접한 의식의 상황과 접하지 못한 무의식의 상황적 연출로 화면을 구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 제2막 2장 - 웃음 뒤에 가려진 삐에로의 눈물.
이번 전시는 일인칭의 극중 동일인물이 야기 상황을 연출해내고 있으며, 그들은 사실 한사람의 모습으로 여러 분장을 하고 등장한다. 가상으로 형태가 왜곡된 인체는 구상성을 기반으로 한 사실조각이지만 사실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이상속 가상인물로 표현된다. 인물의 묘사는 의도적으로 느슨하며 친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 말은 결코 핸섬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추한 모습도 아닌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았던 모습으로 나타났다. 자세히 보면 중성적인 이미지를 모두 소유한 인간의 모습을 통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의 고민은 사유하는 이성에서 웃음 속에 가린 눈물과 같은 묘사를 던지고 있다. 요즘 TV 인기 프로에서 고민해결을 해주는 취지의 발상이 그야말로 예술이라고 하는 말 그대로의 키치적 재미를 주는 코너가 있다. 가벼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상황 설정 속엔 다른 진실의 모습이 있다. 가벼움과 재미의 요소를 더해 흥미로움으로 끌고 가고 있는 점에서 동일한 의도를 지닌 윤지영의 첫 개인전의 상황설정 또한 표면적 요소로는 쉬운 웃음을 유도했지만 그 이면엔 현대인의 고뇌와 슬픔이 작품에서 힘겨운 오브제(가방, 신발, 구속하는 달팽이 껍질, 가식과 형식의 포장상자, 날수 없는 바람 빠진 풍선 등)로 표현된 인간과 함께 하는 소품의 무게를 통해 보이고 자 한다. 그것은 마치 삐에로와도 같은 표피적 웃음 뒤에 가린 슬픔의 모양새처럼 일부 특정인의 고통이 아닌 것이며 그러기에 자신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 또한 가식임을 유도해 낸다.

Hammering Man으로 잘 알려진 공공조각가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의 Walking Man이라는 작품은 직접적인 삐에로의 모습이다. 거대한 인체를 공공미술로 표현해내는 보롭스키 또한 현대인의 모습에서 밝은 얼굴에 가려진 자신만의 고뇌와 가면적 현실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1970년대 중반 다양한 캐릭터 실험으로 캐릭터가 지닌 진정한 비애감을 표현하고자 한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무제 사진작업에도 광대는 출연한다. 사람을 즐겁게 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슬픔이 내재된 존재자, 광대는 슬프지만 그들은 동시에 정신병적으로 히스테리컬하게 행복하다고 설명된다.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공연 홍보물은 삐에로의 분장을 한 '퀴담'이라는 태양의 서커스단 공연 포스터였다. 공연은 현대의 익명성 사회와 소외된 세상에서 부모의 무관심 속에 자란 ‘Zoe’라는 주인공의 스토리이다. 모두인 동시에 아무도 아님을 상징한다는 현대인의 섬세한 고민과 고난을 꿈을 꾸듯 고난이도로 표현하고 있다. 초현실주의 디지털 합성 사진작가 매기 테일러(Maggi Taylor) 또한 현대의 공허한 익명성을 표현하고 있는데, 유사한 이미지의 머리가 없고 몸체만 있는 작품은 동일주제로 연결되며 윤지영의 ‘나’의 존재자와 공연속의 ‘Zoe’와 일맥상통하는 얽힘의 고리 속에서 유사고민의 줄기적 맥락을 보이게 된다. 다양한 사례를 위한 유명 대가들의 엑스트라 까메오 출연이 있었고 그에 따른 다양한 비유 의도는 현대인으로 예술가로서, 배우와 관객으로서 입장에 따라 개인적으로 지닌 의식과 무의식의 공통점을 공유해 보자고 한 것이다.


- 제2막 3장 - 현실과 이상사이, 공존의 혼란스러움.
무언의 당연시되고 규정된 의무감의 무게에 초라하게 위축해버린 몸(육체)과 더불어 연극적인 슬픔과 기쁨을 소유한 그는 사회의 부조화, 불합리성을 자신의 모습을 통해 대비적으로 예리하게 직시하고자 한다. 힘겨워 하는 인체를 매개로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을 꿈을 꾸듯 서술 하였는데 결국 꿈과 현실은 동시에 존재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공존성은 꿈은 현실인 동시에 현실은 꿈이라 보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이고 현실에서의 이상적인 꿈이 이루어진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영원한 꿈이자 이상의 문제가 아니기에 결국 삶의 의미에 까지 파장적인 영향력을 행사 하는 결론에의 허무함에 다다르는 것이다. 허망함을 알기에 이상을 향해 질주하는 현실의 구속을 차라리 행복해 하고자 함이다. 전시는 이제 마지막 장의 무대를 보여 준다.  


- 제3막 - 이상의 상황설정 (묵시적 출연 : E. T. , 나무인간)
예전에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외계인 E. T.는 이제 사람이 되고자 다섯 손가락의 손 모양을 갖추었으며, 번민을 벗어나 고고한 나무가 되길 원해 나무로 변한 인간의 모습이 있다. 현실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탈피한 형태의 물체는 그러기에 더더욱 기괴하고 부조화라 오히려 낯설기만 한다. 단편적 선택의 묘사로 꿈과 이상의 원리를 표현하였고 그것은 결국 현실의 원래 상황을 간절하게 원하게 한다. 허공 위의 초월적 이상공간에 사는 상상의 외계인과 복잡한 사고의 인간의 비대해진 머리(정신)를 묘사한 나무인간의 등장은 박수와 함께 퇴장하며 본 전시의 막은 내리게 된다. 프로이드가 말한 원시적 본능인 id와 새로운 이성과 비판적 도덕인 무의식 초자아 super ego는 결국 비대해진 이성에서 동시에 혼란스러워 한다. 이드와 충동을 억제하는 초자아는 유사점이 있으며 어느 순간 돌파구를 찾아내듯 폭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억누르는 혼돈과 혼란 속에서 자못 의식적 주체인 자아, 즉 ego는 결국 꿈과 현실의 이중적 세계인 사회화된 현실윤리에서 보여 지는 초라한 육체에 불과한 것이라 하겠다. 비록 초라하지만 그러나 그런 현상을 만족함이 최상이라는 전시주제의 흐름을 프로이드의 분석이론과 중첩 해보면서 위안 받고자 하는 모두의 모습이 이 한편의 드라마 코드 속에 침잠되며 예술을 통한 무한대의 치유를 공유하게 되길 바란다.

                                                          

                                                           전시기획자 / 조은정
                                                           www.orangespac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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