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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조은정
subject 이원욱 평론(1)

이원욱 제1회 개인전
사람보다 사람답다는 것, 조각보다 조각답다는 것에 대한 정의

은하계에 떠도는 수많은 별들에서부터 지금 자신이 있는 지점으로 마치 한줄기 광선을 쏘아 보내준 듯, 나의 공간은 의무적으로 그렇게 정해졌는가.
받아들여진 공간 안에서 정해진 인생을 동분서주하며 보내게 된다. 마치, 연못 안에 가두어진 물고기 떼들의 생존전략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처럼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서 있는 위치에서 갈 곳을 잃어버리지는 않은가. 현재의 자리란 생계를 세워 가가기 위해 일상적으로 종사하는 사전적의미로의 직업이란 업과 그 곳에서의 일상을 모두 의미하고 있다. 작가는 나는 왜 이 자리에 있으며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또한, 그것에 만족하고 있는지 하는 본질적인 삶의 의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보게 된다. 예술가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아마도 능동적인 의지에서 선택한 방향이었을 것이고 이 말은 다시 말해 대다수의 규범화된 자본주의 논리를 추종하는 자들의 선택과는 사뭇 다르기에 표면으로 보이는 일상들의 지루한 안정감대신 가끔은 불안하지만 그 불안감은 반드시 벅찬 기대감을 동반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작가는 어느 날, 혼잡한 도로중앙에서 아주 규칙적이며 반복적인 자세로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을 응시하게 된다. 그런 모습은 낯선 모습이 아닌 일상 속의 익숙한 광경이라 그냥 스칠 수도 있었겠지만 그가 잠시 멈추게 된 이유는, 일상의 규칙과 반복이라는 지루하지만 당연한 논리를 대변하듯 기계적인 몸짓으로 수신호만을 필사적으로 보내는 상대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가 책임져야하는 공간의 의무에 대해, 당연히 마땅한 그의 무표정한 얼굴표정에 대해, 단지 수신호를 보내는 것이 그 순간의 절대목표인  행동과정을 보면서 교통경찰은 어느덧 작가자신으로 바뀌었으며 그리고 그 모습은 이제 조각이란 존재로 바뀌게 된다.

호두까기 인형이나 피노키오처럼 조각가의 시야에는 걸어 다니는 인간의 모습이 인체조각으로 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인체를 표현하는 구상조각가이기에 그런 상황적 만남은 우연히 교통경찰의 모습에서 순간 포착된 것이 아니라 이미 잠재적으로 있었기에 그 순간에 응시를 하게 된 것이라 보아진다. 사람들 가치관엔 많은 유형이 있으며 추구하고자 하는 인생의 목적도 다양하다. 일상에 지친 자는 어떤 모습을 대하든 피곤함을 느낄 것이며,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면 돕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것 같지 않을까. 부를 최고로 추구하는 자는 겉치레를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포착된 교통경찰은 조각 작품이 되었고 그의 주변 환경적요인은 건축이란 범주에 들어가 그의 레이더망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예술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외형의 풍요를 대신하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정신으로의 풍요로운 자유의 혜안을 소유하게 하였다. 그는 고대 석조건축물들의 기둥과 탑에 조각 되어진 작품들은 조각인가 건축인가 하는 점에 흥미로운 개념을 부가하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보로부드르 사원과 스투파 내부에는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고 한다. 탑파 안에 불상을 조각해 놓은 것은 신과 우주, 조각과 건축, 인간과 공간이 합일됨을 보여주며 염원의 기능을 한다. 건축적인 조형요소와 연극적인 인체의 결합을 작업관으로 가지게 된 그는 모든 상황에 조각과 건축의 요소개념으로 이분화 시키고 합일점을 만들어 내는 개념 유희를 즐기게 된다. 원형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연극의 경우를 한 예로 들어 보자. 연극에 등장하는 무대와 배우 등 야기되는 상황들을 조각의 범주에 넣었고 그런 상황들을 뒷받침해주고 존재하게 하는 건축적 외곽공간의 의미로 관객을 설정한다. 무대와 그 위의 연극배우는 조각, 관객은 건축이라는 본인만의 규범은 사물을 인지함에 있어 새로운 규칙을 늘 만들어낼 것으로 보아지며, 이는 정신과 육체와 같은 내형과 외형의 이분법적 논리와 귀결될 것이다. 조각적 건축, 건축적 조각으로 이미 그 둘의 특성은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조각에서 건축의 요소를 도입한 작품들과 건축에서 조각적인 요소를 차용한 작품은 고유의 영역에서 발하는 효과를 배가 하는 장점이 있다. 조각에 건축의 의미를 형태적으로 차용한 경우와는 차별된 그의 논리는 형태의 차용이 아닌 정신과 육체의 논점으로 보았을 때 육체에 해당되는 조각정신으로부터의 테두리와 같은 파장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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